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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tals and others

한문 선생의 성교육

수능이 많이 남지 않은 때였다. 필요한 수업을 제외하고 시간표는 전부 자율학습으로 채워졌고, 주간에는 선생들이 들어와 자습 감독을 한답시고 책을 읽거나 자기 볼일을 봤다. 수업이 아니어서인지 우리 담당도 아닌 선생들이 대타로 들어오는 일도 있었는데, 한번은 그해에 새로 부임 온 잘생긴 한문 선생이 들어왔다.
쌍커풀이 진한 눈에 키도 크고 곱상한 외모의 그는 여학생들에겐 선망, 남학생들에겐 질투의 대상이었다. 정장을 다려 입어도 아버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던 다른 선생들 사이에서 그는 유난히 밝게 빛났다. 많은 여학생들이 눈웃음을 치며 그에게 장난으로 애정을 표했고 그럴 때면 그는 조금도 싫지 않다는 표정으로 장난을 받아주었다. 그 모습을 보던 나는 자신의 초라함에 종종 자괴감을 느꼈다.
조용히 자습이 이어지다가, 누가 슬쩍 물어본 건지 아니면 선생 본인이 심심해서 떠든 건지, 어느새 그는 수업을 하고 있었다. 수업의 주제는 한문이 아닌 '성'이었다. 자율학습 시간이라 수업을 듣지 않는 건 그곳에 있던 학생의 권리였고 그 선생을 좋아하지 않던 나는 수업의 내용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반의 모든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게 되었을 즈음엔 나도 그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었다. 그는 핵심적인 내용을 설명하며 아래와 같은 그림을 그렸다.

 

 

성적 흥분, 즉 당시 내가 어려 알고 있지 못하던 단어인 '오르가즘'에 대한 그래프였다. 위의 그래프는 시간 경과에 따른 남자의 흥분, 아래는 여자의 흥분 정도였다. 남자는 짧은 순간 갑작스럽고 큰 흥분을 느끼고 사그라들지만 여성은 천천히 흥분하고 또 그 흥분이 천천히 가라앉는다는 것이다. 선생은 단순히 남녀의 신체를 비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남자들뿐인 우리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남자의 흥분이 사라져도 여자는 여전히 흥분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흥분이 가셨더라도 여자들이 흥분에서 내려올 때까지 달려줘야 한다. 우리의 욕구가 그것을 권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의식적으로 계속 상대를 만져주고 안아주고 키스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들었던 어떤 성교육도 이처럼 깊이 와 닿고 실용적인 건 없었다. 나는 집에서 성교육을 받지 못했고 여전히 성에 대해 잘 모른 채 성을 억눌러온 상태였다. 그때까지 받은 성교육에서 내가 받은 가르침은 '콘돔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뿐, 섹스에 대한 이미지는 야동을 제외하면 성교육 비디오 속의 음침한 장면 외엔 없었다. 섹스가 즐거운 일이며 성인이 되고 나면 적극 권장할 만한 일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것을 잘 즐기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배운 적이 없었다.
청소년기 내내 성을 억눌러온 탓에 나는 그 수업 한 번으로 해방을 얻지는 못했다. 성인이 된 뒤에도 여전히 성에 대해 조금은 부정적이고 아주 많이 부끄러워하며 지내왔던 것 같다. 수업의 교훈을 이행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자라오면서 그런 수업의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면, 부모님이 적극적으로 성교육을 해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든다. 이미 지나온 날 난봉꾼처럼 즐기지 못했던 게 아까운 게 아니다. 뭣도 모르고 나에게 금욕을 강제하며 스스로를 타이르고 충동을 못 이겨 자위행위라도 하면 자괴감을 느꼈던 어린 나를 달래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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