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순간의 느낌만으로 좋은 소재라고 확신하기에는 불안한 요소가 많다. 좋은 소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신만 모르거나, 아예 잘못 짚었을지도 모른다.
이제까지 써왔던 기사는 대부분 그러한 불안을 끌어안고 작성했다. 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내 돈 주고 구입하기'다.
예를 들어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화가를 특집으로 다룰 기획을 세운다고 해보자. 그 화가의 그림을 내 돈을 주고 구입한다고 가정해보면, 돈을 지불할 만큼 괜찮은 아이템인지 아니면 괜찮아 보였던 아이템인지 바로 판단할 수 있다. 무작정 인터넷으로 검색하려 하지 말고 자신의 머리와 주머니의 돈으로 판단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 습관이 자신의 후각을 발달시키는 데에 가장 손쉬운 방법일지도 모른다.
외서 기획에 있어 아주 동의하는 부분이다. 직장인의 경우, 회사 일을 하면서 자기 돈을 써야 한다는 것에 불만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경험상 살펴보건대 돈을 아끼게 되면 새로운 기획이 나올 일이 훨씬 줄어든다. 내 돈을 들여 사서 검토해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의 또다른 장점 중 하나는 겉만 번지르르할 수도 있는 기획을 미리 쳐내는 것이다. 외서는 돈이 아까우니 사지 않아야 할 것, 내 돈을 들이고도 사서 검토해볼 가치가 있는 것으로 나뉜다.
37 당연히 엉성한 디자인보다 세련된 디자인이 더 좋지만, 그렇다고 책을 만들 때 디자인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지는 않는다. '내용을 돋보이게 하는 디자인'이라는 말을 곧잘 하는데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일부는 틀렸다. 최종적으로는 내용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 편집 디자인이어야 한다. 그 관계가 역전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이는 마치 건축가에게 의뢰해서 지은 멋진 집이 막상 살기에는 불편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건축물은 집이라기보다는 건축가의 작품이다.
실제로 요즘 시중에 나오는 많은 책들이 이렇다. 특히 트렌디한 서점에 깔리는 책들이 이런 특징을 많이 보이는데 몇몇 출판사가 눈에 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디자인이 있어 보이고 또 새로워 보인다는 점 때문에 따라 하지 않아도 될 주류 출판사들이 이를 따라 한다는 것이다. 회사 내부 또는 업계에서는 좋은 말을 들을지 몰라도 독자를 생각하는 디자인이라 할 수는 없다.
39 편집 디자인은 광고 디자인과는 다르기 때문에 디자인에 끼워 맞추기 위해 글이나 그림을 제한하는 것은 주객전도나 다름없다. 이런 이유로 내 책을 만들 때는 저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의견을 잘 들어주는 디자이너에게만 일을 맡긴다. 디자이너는 전문가로서 존경하기는 하지만 책은 디자이너의 작품 발표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인정하는 바이지만 일하면서 잘 지키지 못한 점이기도 하다. 일정을 맞추기 위해 또는 귀찮아서 저자보다 디자인을 먼저 생각했던 부분이 있던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저자였다면 대단히 불만스러웠을 것이다.
45 편집자와 디자이너는, 특히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은 함께 일해야 한다. 온라인으로 메일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는 전해지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역시 크게 동의하는 지점. 편집도 디자인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일하는 사람간의 관계는 그것을 중시하지 않는 사람의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같은 건물에서 일한다면 사소한 일이라도 가서 직접 전하자. 남들은 안 한다고 해도, 대면하지 않는 게 그곳의 관례라고 해도 나는 마주보고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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